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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덕성이라는 자랑스런 이름 / 제윤경(심리91)
    작성자 관리자 (ip:)
    • 작성일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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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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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겨울 모 대학에 입학원서를 제출하고 해당학교에서 학력고사 시험에 응했다. 예감은 좋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고3병으로 시험 전 며칠을 불면증에 시달린 채 기진맥진해서 시험장에 들어선 것이다. 오랜 기억에 수학시험이 상당히 어려웠던 것 같다. 그 어려운 시험을 나는 20분도 안돼 답안을 작성하고 말았다. 이미 마음으로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오로지 이 시험만 끝나면 하면서 마음이 시험장 밖 자유의 공간으로 먼저 가 있었던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시간이 빨리 흘러 다음 시간으로 훌쩍 건너뛰고 싶었던 것이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전화로 확인했는데 마음에 휑한 바람이 스쳤다. 눈물이 나거나 절망을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렇게 전기대에서 떨어지고 재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반대를 했다. 학교에서도 반강제로 후기대 지원 상담을 했다. 그 모든 것에 형식적으로 응하고 후기대 시험 전까지 맘껏 놀았다. 놀이동산에 가고 친구들 만나 수다 떨고 퍼머를 하고 화장품을 샀다.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이번에는 합격이었다. 덕성이라는 이름은 그 이전까지 내게 상당히 낯선 이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원서를 접수하다보니 과를 선택한 것도 ‘심리학’과가 다 있네. 하면서 재미삼아 지원을 했었다.
    그런데 합격하고 나니 그 이름을 제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합격통지를 받는 것 자체는 마음이 좋았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게는 낯설고 실패라는 이름으로 다가온 이름이었다. 그날 잠들기전 누운 채로 천천히 이름을 불러보았다. ‘덕성여자 대학교’..‘덕성여자 대학교’ 그리고는 깊은 패배감과 함께 눈물이 나왔었다.
    덕성과의 인연은 그렇게 패배감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개강하기 전에 다녀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는 재수하겠다는 오기와 전기대 불합격으로 인한 패배감을 덧칠한 덕성이라는 내 마음속 이미지를 확 바꿀 수 있었다.
    과 선배들은 물론이고 단대 총학생회 선배들의 당당한 모습이 내가 그동안 스스로에 대한 잘난 척으로 덕성의 이름을 부끄럽게 여겼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나보다 열등하거나 초라하지 않았다. 모두 당당했고 모두 젊은 패기를 지닌 채 빛이 나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나와 같은 전기대 불합격이라는 상처를 비슷하게 안고 있었으나 그 상처를 덕성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물론 학교에 비판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판의식은 참여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는 실천으로 이어졌고 그 실천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서로가 깊은 연대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철부지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부리느라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반성과 더불어 학교에 대해 애정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상처와 반성으로 시작한 학교생활, 처음 1학년 1학기는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오던 방송인이 되리라는 미래 꿈을 위해 대학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을 치뤘고 수습 아나운서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과에서는 친구들과 단체 미팅을 해보기도 하고 선배들 동기들과 주점에서 술자리를 갖기도 했다. 
    입학 식 하는 날 나의 언니는 덕성여대는 데모를 많이 하는 학교인데 학교 들어가서 괜히 학생운동 하는데 휩쓸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실제로 학교는 입학 초부터 전년도 총학생회장의 제적문제로 상당히 시끌 했다. 또한 정치적인 이슈도 만만치 않은 일정이 많아 연일 학내 집회와 도심 연합집회 일정으로 수업이 휴강하는 사태가 계속되기도 했다. 특히 91년 초반에는 정치 집회 참여했다가 전경들의 구타로 나와 같은 새내기 일학년이 숨진 사건까지 발생했고 얼마 안있어 토끼몰이로 여학생이 압박사를 당하는 사건까지 터졌다. 거기에 그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학생들이 데모를 하다가 분신하는 일까지 계속 이어졋다. 그야말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과에서는 집회를 참석하기 위해 집단 휴업을 해야 하는지, 휴강을 해야 하는지 등의 문제로 틈만 나면 토론회를 벌였다. 당장의 정치적인 이슈와 학내 문제로 인해 흥분한 학생들이 있었고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은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집단 휴강으로 의견이 모아졌어도 한 두명은 자신의 의견도 중요하다며 욕을 먹더라도 수업에 참여하겠다고 하기도 했고 그런 학생을 욕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의 중심부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저 주변에서 맴돌며 사회나 학교, 정치나 수업 등 모든 문제에 아직은 부적응 상태였다. 그저 형식적으로 집회에 참여해보기도 하고 수업이 휴강이 되어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편한 마음을 가졌을 뿐이었다. 오리엔테이션 후 학교에 대해 생각이 상당부분 변화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여전히 상실감과 허탈함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휴학을 하고 재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신없이 벌어지는 현실, 선배들과의 몇 가지 세미나에서 받은 충격들이 나를 주변부에 머무르게 했었던 것 같다. 이런 혼란을 나는 여름방학동안 정리를 했다. 밤새 고민하면서 더 이상 방황하다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았다. 특히 겨울이 다가오면서 총학생회 선거가 시작되고 큰 맘을 먹고 학생회 선거 운동에 동참하였고 그 과정에서 덕성이라는 이름에 대해 더욱 깊게 내 마음속에 새겨넣는 계기를 만들었다. 선거가 끝나고 일박이일의 정치집회에도 참여를 했다. 한 겨울 타 대학 강의실에서 신문지 하나 깔아놓고 잠을 청하면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생생함을 경험했다. 살아서 움직이고 무언가 하고 있다는 생에 대한 진한 애착이 느껴졌다. 그 뒤로 지금의 학생회관을 학생회 공간으로 지키기 위해 몇 번 차가운 강의실 바닥에서 전기 난로 하나에 의존한 채 철야 농성을 해보기도 했다. 지독하게 춥고 살을 애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런 고통의 과정에서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졸업 후 진로를 위해 토익을 공부하고 학점을 잘 따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내가 미칠 수 있는 일을 갖게 된 것에 감사했다. 어릴적 부터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미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이다. 
    그 힘으로 졸업도 미루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임했고 덕성이라는 공간을 5년을 다니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남들보다 치열하고 오랜 시간을 다니고도 졸업은 그 뒤 13년만에 하게 되었다. 늦은 졸업으로 사회생활이 녹녹치 않았었다. 그러나 덕성에서의 5년은 내 인생을 바꿔 놓기 충분한 것이었다.
    열정을 배웠고 무언가에 미쳐 하게 되면 원하는 것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커다란 성취감도 갖게 해 주었다. 아직도 총학생회 선거는 잊혀지지 않는다. 상대편 후보는 운동원이 300명가량이었고 나는 그의 10분의 일 수준인 30여명을 데리고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확신에 차있었고 스스로의 확신에 부합하기 위해 매일 남다른 노력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에 선거전단지를 돌리고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학교문제를 공감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좀더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임했던 선거운동기간, 결국 그 당시 서울대학 총학생회연합 신문에 골리앗과 다윗이라는 비유까지 들어가며 선거이변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경험은 살아가는 내내 내게 용기를 준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 다만 나 스스로의 핑계만 있을 뿐이다. 내가 그것을 극복하고 어떤 것이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이며 내가 간절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를 들여다 보고 그 판단하에 열정을 다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소중한 경험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그 경험으로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그것에 진정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가를 판단한다. 판단이 끝나면 나는 주저없이 나의 나태함을 비판하며 열정적으로 뛰어든다. 바로 이런 힘을 덕성이라는 공간에서 배웠다.
    총학생회 선거 당시 민주광장에서 나는 학우들을 모아놓고 유세를 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다. ‘덕성, 그 자랑스런 이름만 남기고 모두 바꾸겠습니다.’
    그 말은 나의 것이 되었다. 내게 자랑스런 덕성의 이름이 남고 나의 투정과 상실감, 허탈함과 쓸데없는 오만들이 변화되었던 것이다. 내가 성공한다면 바로 그때의 덕성이라는 자랑스런 공간에서의 치열함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200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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