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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덕성에서 배운 그것 / 황선(국문94)
    작성자 관리자 (ip:)
    • 작성일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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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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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이른 가을이었지요.

    봄부터 몸살을 알아오던 덕성의 교정에 드디어 폭풍이 일었습니다.

    덕성이 아니라 ‘극성’이라고 불릴만큼 덕성의 학원자주화 투쟁은 명성이 자자했지요. 그 해 정식으로 학기가 시작도 하기 전에 총학생회 간부들이 대거 연행되는 사건도 있었고 학기 중에도 단과대 학생회장 거의 모두가 연행된 상태였음에도, 덕성인들은 10월 총투표와 전면 수업거부를 함께하고 드디어 비리재단을 퇴출시키기에 이르렀습니다.

    수업권을 포기하고 달려든 학생들 뿐 아니라 재임용탈락이라는 부당한 처분에 맞서 끈질기게 싸운 한상권 교수님의 헌신과 교수협의회, 교직원 노조, 동문 선배들, 각 계의 지지가 만들어낸 사학역사상 드믄 쾌거였습니다.

    몇 남지 않은 학생대표들은 단식을 하고 미대친구들은 교정의 곳곳에 아름답고 열정적인 바닥화를 새겼으며 모든 과마다 분임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교과 강의를 대신한 자주강좌를 마련하고 그것을 듣기위해 학생들은 강의실을 찾았습니다. 학자승리를 위한 문화제 자리는 학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참여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저는 그 때 총학생회 학원자주화 담당 간부였습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 대한 강력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당시 느꼈지 싶습니다.

    지금 표현하자니 좀 비장하고 유치한 듯 여겨지지만 여름 방학 직후 시작했던 투쟁이 끝없이 길어지던 어느 날, 어느 새 날리기 시작한 눈발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학생회관 옥상에서였지요. 혼자 옥상 모서리에 서서 덕성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이 사람들, 이 공간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여전한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그 결기가 많이 무뎌졌다 해도 그 느낌. 정말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던 사람이 비로소 가슴 뜨겁게 ‘우리’에 대해서 배우던 순간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기에도 벅차하던 사람이 공동체를 돌아보고 인생의 가치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 것입니다.

    인생을 걸어도 좋은 무엇이 있다는 것을 들끓던 덕성의 교정에서 배웠습니다.

    재단과의 오래고 고된 싸움에서 승리하고 난 뒤 저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덕성에서 배웠다는 그것의 오지랖은 얼마나 넓은지, 아침 신문을 읽으며 눈물을 쏟는 일이 비일비재해지고 전원의 낭만이 아니라 농민의 삶을 고민하게 되고, 민중의 힘으로 개척되어온 역사에 대해 눈 떴으며, 내 학교가 꽉 채우던 그 자리에 그렇게 벅찬 감정으로 내 나라라는 것이 들어왔습니다. 분단 철책이 가슴을 꼭꼭 아프게 찌르고 내내 걸렸습니다.

    학원의 민주화 자주화가 내 인생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듯, 이 나라의 처지 역시 내 운명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는 생각.

    자랑스러운 덕성 하나만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의 행복을 지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 이렇게 오지랖은 정처 없이 넓어지기만 했지요.

    덕성의 기질은 마음이 가는 길을 외면하게 하지 않더군요.

    덕성의 극성스러운 학원자주화 투쟁에 마음을 빼앗긴 후부터 지금까지 어쩌면 저의 삶은 가시밭 길 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저의 생일입니다. 생일이 뭐 별 것입니까. 두 딸아이의 어미가 되고 보니 어릴 적 선물타령이 다 부끄럽습니다. 어미들이 고생한 날이죠. 새삼 고향의 엄마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습니다. 목소리가 지친 듯 들립니다.

    “왜 몸이 아파?”

    “아니, 좀 졸려서 누울까 어쩔까 하고 있어. 전화는 왜?”

    “왜는 엄마 고생하셨다고.”

    “그래 우리 집 애물단지 낳느라 고생했지.”

    애물단지. 애물단지로 불려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어머니 보기에 나는 여전히 ‘고생을 사서하는 년’입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서울까지 가지는 못하겠고 애들이랑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통장에 돈을 좀 부쳤다. 딴 데 쓰지 말고 맛있는 거 사먹어라.”

    당부합니다.

    “으이구 내가 너 돈 벌어 호강시켜줄 것 기다리다 뒈지겠다.”

    라는 험악한 말도.

    1998년 대학생 대표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중국을 헤치고 평양행 비행기를 탔었습니다. 물론 돌아올 땐 휴전선을 즈려밟고 왔습니다. 꽃을 들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부르며 안기부 헬기에 결박당해 감옥으로 갔더랬습니다.

    글쎄요. 스물여섯 나이에 지구를 돌아 다녀온 그 길이 이후 우리의 분단체제에 얼마나 대단한 파열구를 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퍼포먼스가 굉장히 유효했고 중요했다고 지금도 변함없이 생각합니다. 그 나지막한 군사분계선을 밟고 서서 노래를 부를 때 제 마음은 절박했습니다.

    ‘세상 사람들 봐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이렇게 잊지 않고 있다. 봐라 우리는 분단을 거부한다.’

    일찍이 48년 김구 선생님, 89년 문익환 목사님, 임수경 언니로부터 전해지던 스케일 큰 그 퍼포먼스는 그러나 2000년 이후 대통령을 비롯한 각 계의 인사들이 대중적으로 하게 된 덕에 기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3년7개월의 옥고를 치루며 20대 후반을 모조리 감옥에서 보내야 했지만 복잡하고 슬픈 현대사를 가진 이 나라에서 그 정도면 과하지 않다 싶을 정도로 미래를 낙관하고 있기도 하고 말입니다.

    지난 2005년 합법적으로 평양 관광길이 열리고 전과는 퍽 다른 감회로 찾았던 평양에서 저는 저의 둘째 딸 ‘겨레’를 낳았습니다.

    살면서 제법 큰 일을 저지르며 살아왔음에도 이때만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은 때는 없지 싶네요. 기획출산이다 신원정출산이다 오해를 하는 축도 있었지만 그 어떤 험한 목소리도 탄생이라는 축복을 덮을 수는 없었지요.

    평산산원서 보름간 극진한 몸조리를 받고 서울 - 평양 간 거의 직선으로 놓여진 고속도로를 달려 갓난아이를 안고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스물여섯 살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웠던 그 자리에 사람들이 환영의 꽃다발을 들고 서있는 것을 보며 느낀 것은 ‘내가 잘 가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두 번의 정상회담과 합의가 무색할 정도로 경색되어 있고, 이번엔 내가 아니라 남편이 국가보안법 사범으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있음에도 긴 분단을 맺음 하는데 이 정도 우여곡절이 없을 수 있나,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은 너무 태평한가요?

    비록 내 딸 민이와 겨레는 태어나 한 번도 아빠와 함께 살아본 적이 없고, 가뜩이나 어려운 시절 돈에 연연하지 않으며 살려고 고집스럽게 앞만 보다보니 피로가 엄습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것,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는 것,

    언제라도 마주칠 역사라는 것에 인생을 걸어본다는 것,

    그것 참 매력 있는 일이라는 그 도취가 더 대단하니 말입니다.

    작년 남편은 10년 수배 중 감옥으로 갔지만 그의 한결같은 응원을 받으며 저는 진보정당 민주노동당 비례후보로 총선출마를 감행했습니다.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를 경영할 포부와 안목이 없는 정치는 고작 밥그릇 싸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을 인정받고 함께하기 위해 앞으로도 다소 무모해 보이는 저의 도전은 계속될 것입니다. 그것이 덕성의 기질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작년 국민들이 치켜든 촛불의 바다에서 길어 올린 시들을 모아 <끝을 알지>라는 시집도 하나 펴고 조촐하니 출판기념회 겸 시문학의 밤 행사도 마련했습니다.

    그 때 사람들 눈물 꽤나 부른 그 자리가 끝나고 언제나 ‘애물단지…, 저걸 덕성여대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라고 속 타 하시는 우리 엄마 그러십니다. 괜히 흥미 없다는 목소리로

    “멋지긴 멋지구나.”

    새삼 이 사회 각지에서 ‘살되,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숱한 덕성인들에게 심심한 응원과 연대의 인사를 보내고 싶은 날입니다.


    2009-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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